미세리코르디아, 알랭 기로디 (2024)

<미세리코르디아>에선 자동차가 목도하는 수많은 나무와 길들이 프레임 속을 메우고 사라진다. 보기만 해서는 이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불확실한 상황을 앞에 두고 자동차는 늘 예상치 못한 정차를 겪는다. 우선 제레미는 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뱅상 아버지의 장례식에 도착한다. 우발적으로 뱅상을 살인한 후 그는 무작정 기차역으로 떠나고, 경찰을 피하기 위한 야밤의 도주는 필리프 신부에 의해 저지되기도 한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지리적인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풍경을 담은 차창으로, 스크린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은폐하려는 듯 보인다. 명확한 목적지가 없는 운전은 결국 제레미를 마을로 돌아오게 만든다. 정확히는 마을이 그를 붙잡는다. 정해진 종착지가 없는 운전만큼이나 주인공 제레미 역시 알 수 없는 인물이다. 마을 사람들이 애착을 가질 대상은 사실 제레미보다는 출신이 명확하고, 혈연과 추억으로 연결된 뱅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에 거주하는 마르틴과 필립, 그리고 왈테르는 제레미를 필요 이상으로 두둔한다. 미지의의 숲속에서 뱅상이 죽은 자리에 버섯이 핀 이후로 살인 사건은 그 실체가 구체화되나 그들은 제레미의 은신처가 되길 자처한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이 서로 공유하는 섹슈얼한 욕망은 심화된다. 여러 인물들의 얽히고 설킨 욕망을 다루는 과정을 통해 <미세르코르디아>는 자비와 사랑이란 개념을 파헤친다 영화는 노골적으로 살인 사건을 해결하지 않을 것임을 드러낸다. 등장인물들 간의 과거를 밝혀 갈등의 이유를 명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가장 진한 파토스가 느껴지는 부분도 역시 제레미와 필립 신부의 대화에 있다. 목숨을 끊어 업보로부터 도망치려는 제레미를 설득하는 필립 신부의 어딘가 애절하고 격정적인 대사는, 알랭 기로디가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바와 닿아있다. 재밌는 점은, 기로디는 이러한 여정 사이에 기독교적인 요소들을 끼워넣는다는 사실이다. 도덕적 해이를 두고 과할 정도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고백하는 신부의 모습은 예수의 것과도...